남은 막걸리로 만드는 술빵
며칠 전 수육을 해 먹고 애매하게 남은 막걸리로 술빵을 만들어 보았습니다.
네? 어떻게 술이 남을 수가 있냐고요? 요즘 체력이 떨어져서인지 막걸리 한 병을 비우지를 못하네요.
초등학교 시절 외가에 가면 할머니께서 술 빚고 남은 지게미로 밀가루 반죽을 발효시켜 빵을 쪄주셨습니다. 오븐에 굽는 게 아니고 찜기에 찌는 거라 만드는 방법은 떡에 가까운 음식이었습니다. 어릴 때는 술냄새 나는 이걸 굳이 왜 먹냐며 싫어했습니다만 나이가 드니 가끔 생각이 나더라고요.
재료는
(1컵=200g)
밀가루 4컵
생 막걸리 1컵
설탕 1컵(단거 싫어하면 2/3만)
소금 1/2 테이블 스푼
달걀 2개(부드러운 빵을 원하면 3개)
토핑 재료 - 건포도, 견과류, 옥수수, 콩 등
막걸리는 반드시 생 막걸리를 사용해야 합니다. 유통기한 1년짜리 살균 막걸리에는 효모가 없어 발효가 되지 않습니다. 이스트를 구비해 놓기 힘든 일반 가정집에서 이스트 대신 막걸리에 든 효모균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우선 계란에 설탕과 소금을 넣고 잘 섞어줍니다. (사진처럼 막걸리에 계란 넣고 풀면 잘 안 섞입니다. 반드시 계란을 푼 뒤에 막걸리를 넣으세요) 여기에 막걸리를 넣고 섞습니다. 저는 2컵을 했는데 빵에서 막걸리 냄새가 많이 나더군요. 1컵이 적당할 것 같습니다.
잘 섞어졌으면 밀가루를 체에 쳐서 내립니다. 체에 치지 않으면 밀가루가 뭉칠 수도 있습니다.
저는 지난여름 콩국수 해 먹고 남은 콩가루가 있어서 1컵 넣었습니다. 없어도 됩니다.
무표백 국산 밀가루에 콩가루까지 섞었더니 색이 아주 노랗다 못해 황토색이 되었네요. 잘 섞어준 뒤 랩을 씌우고 발효를 시켜야 하는데 막상 해보면 발효가 잘 안 됩니다. 몇 시간이 걸릴지 몰라요. 따뜻한 봄이면 몰라도 2월 말 날씨에는 실내에서 전기장판 위에 올려두었는데도 발효가 잘 안 되더군요.
그래서 중탕을 했습니다. 냄비에 따뜻한 물을 넣고 반죽이 든 볼을 데워줍니다. 반죽 볼이 중탕하는 물에 직접 닿는 경우 절대 뜨거운 물로 해서는 안 됩니다. 바닥 부분 반죽이 익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뚜껑을 덮고 중탕을 1~2시간 하면 반죽이 부풀어 오릅니다. 반죽이 많이 부풀수록 푹신한 빵이 만들어집니다.
저는 약간 부푼 상태에서 발효를 끝냈는데 취향대로 하시면 됩니다.
말 그대로 빵인데 찜기에 찌는 게 마음에 안 들어 저는 전기밥솥에 했습니다.
25분이 지나고 5분쯤 뜸을 들인 뒤 밥솥 뚜껑을 열어봤습니다. 젓가락을 반죽에 꽂아서 젓가락에 반죽이 묻어 나오지 않으면 다 된 것인데 밥솥에서 균일하게 익지 않았더군요. 여러 군데를 찔러보세요.
식용유를 바른 덕분에 밥솥에서 쉽게 분리가 되었습니다.
비주얼이 꽤 그럴싸하죠?
잘라서 한입 먹어봤습니다.
그런데 응?
막걸리 냄새가 왜 이렇게 심하지? 그리고 알코올 향도 느껴집니다.
전기밥솥에서 25분이나 가열했는데 알코올이 전부 날아가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어떤 조각은 익었고, 어떤 조각은 덜 익었더군요. 제 밥솥에 문제가 있는 건지 불균일하게 있었습니다.
촉촉하니 식감이 좋긴 한데 술 냄새가 과해 너무 거슬렸습니다. 막걸리를 마시는 느낌. 그래서 저는 막걸리 2컵을 넣었지만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한 것입니다.
피자 모양으로 자른 빵을 또 가로로 3등분으로 잘라 에어프라이어에 돌려봤습니다.
이렇게 했더니 성공입니다. 이제야 제대로 된 빵이 되었습니다. 수분이 날아가서 빵과 쿠키의 중간 정도의 단단함이 되었고, 과했던 술 냄새가 아주 매력적으로 변했습니다.
살짝 단맛이 돌면서(반죽에 설탕을 2/3컵 넣었습니다), 바삭거리는 식감, 근사한 효모 향이 은은하게 도는데 말로 표현하기가 힘드네요.
술냄새와 은은한 효모 향은 정말 한 끗 차이네요. 숙성이 잘 된 와인이나 치즈 같은 풍미입니다. 완전 성공입니다. 이게 술빵의 매력인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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