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Camino de santiago

[카미노 데 산티아고] #0 여행의 시작. Camino de Santiago

beercat 2013. 1. 30. 00:09

4.24


일을 그만둔 지 딱 한 달째 되는 오늘, 난 여행을 떠난다. 직장을 그만두고 아무것도 한 게 없는 것 같아 날짜를 세어보니 일주일은 고향 부산에 가 있었고, 일주일은 제주도에, 나머지 일주일은 알바를 했다. 그렇다면 나머지 일주일은 어디로 간 것일까?


일을 그만두며 나 자신과 약속했던 것을 하나도 지키지 못했다. 

운동도 안 했고 영어공부도 안 해서 돈만 날렸으며 그 많이 사 놓은 책 하나도 읽지 않았다. 산티아고를 다녀오면 이런 나와 작별을 할 수 있을까? 변화된 내가 되어 40일 후 한국으로 돌아오길 고대한다.






비행기에 올라타고는 나처럼 산티아고에 가는 사람이 있는지 유심히 살펴봤다. 카미노 카페에서 나랑 같은 날 같은 비행기를 타고 가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대각선에 앉아있는 사람이 등산복에 등산화. 이 사람이 유력하다. 그리고 그 예상은 맞았다. 말 걸기 애매해서 그냥 있다가 내릴 때 얼굴이 마주쳐 물어봤었는데 그 사람이었다.





같이 수하물을 찾으러 갔는데 여기서 한국사람 여럿을 또 만났다. 그 중 어린 여자애 한 명이랑 셋이서 파리 시내로 가는 지하철을 같이 타러 갔다. 드골공항에서 파리 시내로 들어가려면 RER B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데 동전 교환하는 곳을 못 찾아 표를 끊는데 시간이 꽤 걸렸다. 그리고 기차역 사무실도 있어 내일 생장으로 갈 기차표를 미리 받아서 파리 시내로 들어가는 지하철에 올랐다. 그런데 비행기에서 만난 사람이 행동이 너무 조심스러워 답답했다. 그게 오랜 비행으로 지쳐있는 심신에 불을 질렀다. 뭔가 나랑 안 맞는 사람이라는 직감이 온몸을 감쌌다. 카미노에서는 안 만났으면 싶을 정도로. 



처음 와 본 유럽. 지금 이곳은 프랑스 파리. 지하철 내에서는 유럽에 왔다는 느낌을 전혀 받지 못했다. 심지어 내 앞에는 일본인 할머니 한 분이 앉아계셨고 각기 다른 피부색의 사람들, 여행객들과 직장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뒤섞여있었다. 창밖 구경을 하며 수시로 지하철노선도를 살피는 내게 맞은편의 일본인 할머니는 기차가 '북역'으로 가는 게 맞는지 물었다. 그녀는 딸이 덴마크에 있어 머물다 심심해 파리에서 4일 정도 관광하다 덴마크로 돌아갈 예정이라고 한다. 안되는 일본어로 이리저리 -주로 한류에 대해- 이야기하며 시간을 때웠다. 북역에서 할머니가 내리는데 내게 빵과 콜라를 쥐여주시며 여행 잘하라고 하셨다. (근데 암만 봐도 처음에 내가 일본사람인 줄 알고 말을 걸었던 것 같았다.)





RER B선에서 내려 일반 지하철로 갈아탔더니 이제서야 파리에 온 느낌이 확실히 들었다. 두 번을 갈아타서 민박집에 도착했다. 민박 광고문구에서 본 것처럼 정말 일반 파리 시민이 사는 주택이었다. 너무 피곤하고 몽롱해서 바로 씻고 쉬고 싶었지만, 온수가 오후 5시부터 나온다고 해서 주변을 좀 돌아보기로 했다. 밖을 나섰는데 생각보다는 큰 감흥이 없었다. 그냥 파리구나 하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느낌. 근처에 한국식당도 하나 있었다.










여태껏 여행이나 출장을 갔을 때 항상 일어나 영어가 통하는 곳으로 갔었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었지만, 이번엔 상황이 다르다. 슈퍼마켓에만 가도 영어는 보이지도 않고 대화도 전혀 통하지 않았다. 손짓 발짓으로 내일 아침에 먹을 빵을 조금 사서 들어왔다. 그리고 샤워를 하고 저녁을 먹었다. 생각보다 반찬이 잘 나왔고 맛도 있었다. 부대찌개에 4가지의 반찬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다른 한인민박보다 여기서 먹은 저녁이 월등히 좋았다. 이제 한 달 내에는 맛보지 못할 한식을 배불리 먹었다.


지하철 RER B 9.25

내일 아침 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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