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Camino de santiago

#3 출발. 피레네 산맥을 넘어 론세스바예스로(st.Jean-Roncesvalles)

beercat 2013. 1. 31. 14:23

-4.26(1) St.jean pied de port -> Roncesvalles(28km)

06:30 ~ 14:30

 

 

 

 

아직 시차 적응이 되지않아 새벽에 일찍 잠에서 깼다. 

어젯밤 샤워를 했기에 간단히 씻고 짐을 챙겨 주방으로 갔다. 토스트를 먹고 점심으로 먹을 빵 몇 개를 챙긴 뒤 본격적으로 걸을 준비를 했다.

 

<프랑스어 바스크어가 같이 쓰여있다>

 

 

발걸음은 가벼웠다. 하늘은 컴컴했지만 걷는 사람들이 드문드문 보였고 처음 보는 풍경들에 마음이 들떴다. 빗방울이 살짝 떨어지기는 했지만 해가 뜨기 시작하면서 구름도 걷혔고 호랑이 장가가는 날처럼 맑은 하늘에 비 오는 날씨가 이어졌다. 시골의 오솔길을 걷는 기분이라 기분은 너무 좋았다. 

 

 

<왼쪽은 모르겠고 오른쪽이 그 유명한 나폴레옹길. 나폴레옹이 스페인 원정때 즐겨 사용했던 길이라 한다>

 

 

 

 

 

 

 

<이 사진을 찍을 때까지는 천국이었지. 태어나서 처음 보는 멋진 풍경과 안개, 구름을 뚫고 비치는 햇빛>

 

그런데 생활방수되는 옷을 입고 있어 그냥 걸었는데 나중에 그게 화근이 되었다. 풍경도 좋고 날이 개길래 계속 좋을 줄 알았다. 그런데 정상으로 가면 갈수록 정말이지 바람이 미친 듯이 불고 비, 우박이 내리는데 앞으로 나아가기도 힘들 정도였다. 안경이 날아가고 빗방울이 닿는 얼굴은 주사를 맞는 듯 따가웠다. 설상가상으로 지난주 제주 올레길 걷다 생긴 무릎 통증이 재발해서 등산스틱에 의지해 걸었다.

 

 

<여기가 그 유명한 오리손 산장>

 

 

<걷다가 돌아가신 분들의 추모지>

 

 

 

 

금방 허기가 져서 걸으며 초코바를 수시로 꺼내 먹었고 점심도 쉴 곳이 마땅챦아 알베르게에서 챙긴 빵을 비를 맞으며 먹었고 진짜 힘들때 먹으려고 가져온 에너지젤도 위장으로 짜 넣었다.

 

상의 하의는 다 젖었고 장갑 낀 손도 젖어서 감각이 없었다. 출발부터 점심 먹으려고 잠시 멈춘 것 이외에는 정말 쉴 틈 없이 걸었다. 정상 끝 근처에 쉘터가 있었는데 사람들로 엄청나게 붐볐고 배낭에서 초코바를 꺼내는데 손가락이 얼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아 너무 당황스러웠다.

 

다시 출발했을 때는 더 좌절이었다. 심한 안개에 가려 보이지 않았는데 알고 보니 안개 때문에 앞이 하얗게 보이는 게 아니라 눈 때문에 하얗게 보이는 것이었다. 등산스틱으로 찔러보니 20cm는 족히 들어간다. '눈 올 때 여기 왔던 사람들은 죽음이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나보다 일찍 출발한 사람에게 얘기를 들었을 때 눈 때문에 고생을 너무 많이 했다고 한다.

 

 

 

쌓인 눈을 만나고 나서는 줄곧 내리막이었다. 계속되는 내리막인 걸로 봐서는 이제 하산하는 느낌이었다. 목적지 론세스바예스가 산 중턱에 있기에 희망이 생겼지만, 무릎 통증은 오르막보다 내리막에 쥐약이었다. 오른쪽 발이 땅에 닿을 때마다 무릎이 움찔움찔했다. 지도를 보고 대충 계산해보니 3시간. 한참 내려가고 있는데 앰블런스가 보였다. 정말이지 좁은 길이었는데 자동차가 올라오는 게 신기했다. 이것도 나중에 얘기를 들어보니 기차에서 만난 일본인 후쿠다 아저씨와 모르는 이태리 할아버지가 저체온증으로 이 앰블런스에 실려갔다고 한다. 아무튼, 첫날 내 기억의 8할은 '추위'였다. 배낭 속의 비옷만 제때 챙겨 입었으면 이런 추위는 느끼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방수되는 장갑도 절실했다.

 

 

<이 건물을 보자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곧 목적지가 나온다는 뜻이니까>

 

산을 다 내려와 도로위를 걸을땐 마음이 가벼웠다. 그런데 너무 춥고 피곤해서 교회 건물만 보고는 엉뚱한 길로 들어섰다. 카페가 보여 무작정 들어가서는 비옷을 벗고 카페콘레체 Cafe con leche를 시켰다. 뜨거운 커피잔을 쥐고 나서야 굳었던 손가락이 조금씩 펴진다. 하지만 몸 안의 냉기는 가시지를 않는다. 커피 한 잔을 더 마시고 싶었지만 짐을 챙겨 들고 알베르게가 어디 있는지 물어 찾아나섰다. 
알베르게에는 침대를 배정받기 위해서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출발할 때 같이 갔던 A누나는 나보다 한참 앞에 줄을 서 있었다. 알베르게는 매우 깨끗했다. 가이드북에 있는 중세시대 병원 같은 낡은 건물을 상상했었지만, 그 건물을 허물고 새로 지은 지 1년 정도밖에 안 되는 듯한 새 건물이었다. 먼저 완전히 젖은 신발을 벗어 안에 신문지를 구겨 넣고는 침대로 와서 짐을 풀고 샤워부터 했다. 다행히 뜨거운 물은 잘 나왔는데 줄 선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오래하지는 못했다. 물이 몸에 닿자 살 것 같은 기분이었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저체온증 처럼 계속해서 온몸이 떨렸다.

 

<몸에 걸쳤던 것은 모조리 젖었다>

 

<필요없는 물건을 서로 공유할 수 있는 곳. 수영복을 보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카미노에서는 필요없는 물건이지>

A누나에게 저녁을 어떻게 할 건지 묻고 아까 커피를 마셨던 카페에서 순례자 메뉴 menu del peregrino를 하길래 같이 예약하고 성당주변과 호텔을 구경했다. 그러다 어제 생장입구에서 만난 B부자를 만났는데 오늘은 호텔에서 묵는다고 하며 저녁 먹고 방으로 와서 같이 와인을 마시자고 하며 호텔 방 번호를 알려줬다.



저녁 8시에 맞춰 식당으로 갔는데 A누나와 나는 외국인 두 명과 같은 테이블에 앉게 되었다. 

캐나다인 Jonh, 그리고 홀란드인 Rob. 이 중 Rob은 산티아고까지 계속해서 만났다 헤어졌다를 반복했고 나중에 피니스테레에서도 만났다. 이후에 먹은 순례자 메뉴와 비교하면 여기 저녁은 매우 부실했다. 와인도 무제한인 것 같았는데 몸 상태가 좋지 않아 조금만 마셨다.



 


저녁을 먹고 밖으로 나와 보니 마을이 안개에 휩싸여 있었다. 그냥 숙소로 들어갈까 하다 아까 약속한 게 있어 B 부자가 있는 호텔로 들어갔다. 오늘 걷다 길에서 만난 한국인 청년 한 명이랑 처음 보는 교수님이라는 분도 계셨다. 시간이 늦어 오래 있지는 못했지만, 이 지역에 돼지갈비 오븐구이가 유명하다는 얘기를 듣고는 알베르게로 돌아왔다. 

침대 옆자리는 독일 부녀가 있었다.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딸이랑 아버지였는데 짐도 너무 간촐하고 침낭도 없었다. 잠 잘 때도 커다란 비치타올을 몸에 두르고 잠자리에 드는 게 감기에 걸리기 딱 좋은 케이스였다.

 



사용경비

카페 1.4

알베르게 10

저녁 9

총 20.4 /누적 60.9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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