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Camino de santiago

#6 나 자신과의 싸움. 푸엔테 라 레이나까지(Pamplona-Puente La Reina)

beercat 2013. 2. 3. 22:37

4.29(4) Pamplona -> Puente La Reina(24km)

07:00 ~ 14:00





어젯밤 화장실을 다녀온 이후 몸이 훨씬 가벼워졌다. 어두컴컴한 새벽 도심을 걷는 기분도 새롭다. 팜플로냐 시내는 작아서 한 시간 남짓 걸은 것 같은데 시내를 빠져나와 시 외곽으로 나왔다. 지나가는 길에 나바라대학도 보였다(팜플로냐는 나바라 주에 있다).

눈앞에 보이는 건 온통 유채꽃이었다. 유채꽃 많다는 제주도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마음은 무겁다. 멀리 오늘 넘어야 할 페르돈 언덕이 보였는데 언덕이 아니라 산이었다. 다시 몸이 슬슬 피곤해지며 내가 이걸 넘을 수 있을까 부터 시작해서 이걸 넘을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결국, 넘긴 넘었는데 그냥 걷기 싫다는 생각이 하루종일 내 머릿속을 지배했다. 어제 붙인 트라스트 덕인지 가파른 내리막을 내려와도 무릎은 괜찮았다. 생각만큼 페르돈 언덕이 가파르지는 않았지만, 막바지에 진흙이 압권이었다. 점성이 너무 높아 자전거 순례자는 타이어에 진흙을 떼어내기에 바빴고 걷는 사람은 신발이 벗겨질 정도였으니...


<하천에 콘트리트를 써서 인위적으로 만들지 않아 좋았다>






<노란 부분은 전부 유채꽃밭이다>



<흙벽에 기와 나무로 된 문을 보면 한국의 시골이 떠오른다>


푸엔테 라 레이나에서 알베르게는 동네 입구에 위치한 사설 하쿠에 알베르게를 이용했다. 라라소아냐에서 같이 버스를 탔던 스페인 사람이 여기 좋다고 했는데 알고 보니 정작 자기는 공립 알베르게에서 묵었다. 어제 나에게 트라스트를 주신 아주머니를 여기서 또 만나 침대 옆자리에 함께했다. 덕분에 무릎이 안 아픈 것 같다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좀 이따 보니 똑같이 생긴 한국 아주머니 두 분이 들어오셨다. 너무 닳아서 처음엔 쌍둥이인 줄 알았는데 쌍둥이는 아니고 그냥 자매라고 하신다. 알고 보니 이분들은 단체 패키지로 카미노에 오셨는데 단체로 움직이는 게 너무 싫어 자매끼리만 따로 움직인다고 하셨다. 한국에서 출발 전 카미노 단체 패키지로 수십 명이 다닐 예정이라기에 두려움에 떨었는데(나랑 출발 일정이 거의 비슷했다) 다행히 카미노 내내 그 팀을 만나진 않았다. 이 분들도 단체로 움직일 생각으로 온 거라 정보가 없어 나를 너무 귀찮게 했는데 간식으로 라면스프에 직접 밀가루 반죽해 수제비를 만들어 주셔 기분이 좀 풀렸다. 역시 사람은 먹는 것 앞에서 약해진다. 그리고 라면스프는 정말 최고의 조미료인 것 같다.










씻고 빨래를 하고 만들어 주신 수제비를 먹고 아주머니들이 미사 드리러 간다기에 나도 성당에 가볼 겸 같이 나왔다. 밖에 나오니 빛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구름 사이에서 햇빛이 비치는데 정말 특이한 광질을 보여줬다. 성당에 왔는데 미사 시간이 어중간하게 남아 마을 이름인 다리(Puente)도 구경하고 마을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 길에서 우연히 몇 번 보기는 했지만, 통성명은 하지 않았던 한국인 Y를 만나 식당에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며 저녁을 먹었다. 수다를 좀 떨었더니 기분이 훨씬 좋아졌다. 이런 게 여행의 묘미인가 하는 생각도 들고. 내일을 위해 다시 파이팅 해야겠다.



사용경비

알베르게 9

물 1

세탁 8

저녁 8

총 26 /누적 144.7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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