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9(14) Fromista -> Carrion de los condes(22km)
09:00 ~ 14:00
아침에 혼자 깨는 기분이 이상하다. 좋다는 느낌이 아니라 '이상하다'.
오늘 걸을 거리는 길지 않아 느긋하게 준비를 하려고 해도 괜히 마음이 조급해져 빨리 준비를 하게 된다. 내가 쓰던 물건을 햇빛을 보게 할 겸 모조리 가방에서 꺼내 늘어놓았었는데 그것들을 가방의 원래 있던 자리에 쑤셔 넣고 간단하게 과일을 먹고 출발한다. 어제 뜨거운 욕조에 몸을 담가서 그런지 몸이 아주 가볍다. 몸도 가볍고 발걸음도 가볍다. 출발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저기 앞에 검은 머리의 동양인 세 명이 나란히 걷는 것이 보인다. 반가운 마음에 속력을 내어 가까이 가봤더니 SK, J, M이라고 하는 한국인이었다. 나와 마찬가지로 까리온까지 간다고 한다.
<당분간 호텔은 안녕...>
오늘 길은 메세타답게 거의 평지였다. 그리고 어디 한곳 앉을 데도 마땅찮았다. 오솔길 끝자락 다리 위에서 대충 또 과일을 먹고 다시 출발하여 까리온에 도착했다. 마을 앞에 호객행위를 하는 사람들이 있어 뭔가 했는데 자기네 알베르게로 오라고 하는 직원이었다. 삐끼들이 있는 마을은 처음이었다.
<저기 보이는 빈집 앞에서 간단히 점심을 먹었다>
<단군의 느낌이 나는 산티아고 벽화>
나는 수녀회에서 운영하는 산타마리아 알베르게에 묵었는데 아까 만난 한국 애들은 수도원에서 운영하는 곳으로 갔다. 샤워하고 빨래하고 바르에 앉아 맥주를 마시고 있으니 부자를 만났다. 자기네들은 삐끼따라 산티아고 알베르게라는 곳에 갔는데 시설이 꽤 괜찮았다고 한다. 맥주 한잔 얻어마시고 아들은 시꺼먼 물을 마시길래 뭐냐고 물었더니 '깔리무쵸'라고 레드와인과 콜라를 섞어 만든 칵테일이라고 한다. 뭔 맛일까 싶었는데 마셔보니 뜻밖에 맛있다. 부자는 내일 버스를 타고 레온까지 간다고 한다. Y랑 H누나랑 떨어진 지 하루밖에 안 됐는데 너무 심심하다. 같이 몰려다니며 밥 해먹는 게 너무 익숙해진 것 같다. 평온해서 좋긴 한데 너무 심심하다는 느낌이다.
동네를 돌아다니다 한국 애들을 다시 만났는데 이 동네에 대형마트가 있어 간다길래 나도 같이 갔다. 바게트빵, 초리소, 요구르트, 맥주 등을 샀는데 여기서 라면을 발견했다. 웬 횡재냐 싶어 4개를 샀다. 무려 네슬레에서 만든 야끼소바 라면이었다. 끓여보니 맛이 의외로 훌륭했다. 만들어놓은 바게트 샌드위치는 먹고 싶지 않을 정도로. 바게트 샌드위치는 내일 먹기로 하고 냉장고 행. 내일 떼라디요스에 도착하면 또 끓여 먹어야겠다.
<약간 덤앤더머 같았던 브라질 아저씨들>
<고향의 그리운 맛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었던 네슬레 야키소바>
늦은 저녁 내 침대 옆에 새로운 순례자가 자리를 잡았다. 상당히 이국적인 느낌의 일본 사람이었는데 이름은 유코. 복장은 일반 순례자들이 입는 기능성 아웃도어복과는 무관한 히피 복장에 생김새도 일본사람이라기보다 오키나와 원주민이나 멕시코인 같았다. 비슷비슷하게 생긴 서양인들 틈에 유코가 있으니 느낌이 색다르다.
침대에 누웠지만 이제 해가 더 길어져 소등시간인 밤10시무렵이 되어야 가까스로 해가 진다. 오늘은 모든 게 낯선 느낌이다. 아침에 깼을 때도 혼자였고, 길에서 늘 함께하던 이들도 없었다. 왠지 외로운 밤이다.
사용경비
커피 3
알베르게 5
맥주 1.2
식료품 8.1
총 17.3 /누적 404.87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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