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오늘은 오스피탈레로의 생일(Astorga-Foncebadon)

-5.17(22) Astorga -> Foncebadon(27km)

07:10 ~ 15:00

 

 

 

숙취로 너무나 괴로웠다. 어제 우리가 샀던 와인 이외에 옆에서 남는 와인이라고 주는 와인을 모조리 마셔댔더니 꽤 많은 양을 마신 것 같다. 반면 어제 벤치에 누워 자던 미시로는 완전 멀쩡했다. 걷는데 너무 힘들었다. 가다 쉬다를 반복하다 미시로에게 미안해 먼저 가라고 할까 하다 물통에 담아 온 물 500mL를 원샷했더니 그때부터 몸이 조금 괜찮아졌다.

 

 

<너무나 탐스런 크림색의 고양이>

 

 

<어느 알베르게 겸 식당에서 만난 강아지>

 

<이런 보카디요를 계속 먹고있으면 샐러드도 들어가고 마요네즈, 케쳡도 들어간 한국식 샌드위치가 너무나 그립다>

 

 

오늘 걸었던 길은 대체로 평탄했다. 대부분의 길이 산길이었고 도로를 옆에 끼고 있다 하더라도 자동차는 거의 다니지 않았다. 중간중간 폭탄 터지는 소리가 들려 주변에서 공사를 위해 발파작업을 하나 싶었는데 Rob이 다이너마이트 소리가 아니라 마른하늘에 벼락 치는 소리라고 했다. 높은 고원지대를 걷는데 벼락이라니 무시무시하다.

 

 

 

지나가다 양 떼랑 양치기를 만나게 되었는데 높은 곳에서 산 아래를 내려다보며 듣는 종소리는 너무나 아름다웠다. 동영상에는 바람 소리가 많이 들어가서 아쉽다. 눈앞에 펼쳐진 풍경과 바람에 몸과 눈을 맡기고 양의 목에 달린 종소리를 듣고 있으니 한국 어딘가 더운 초여름 어느 날 카페에 앉아 시원한 아메리카노를 마실 때 살랑살랑 바람이 불어와 창문에 매달려있는 풍경소리가 들려오는 그런 느낌이었다.

 

오르막을 계속 오르다 보니 폰세바돈이라는 표지판을 발견했다. 오늘의 목적지에 다다른 것이다. 처음 출발했을 때는 숙취에 너무나 괴로웠지만, 막상 도착하니 미시로와 누가 빨리 도착하나 내기를 하며 뛰어갈 정도로 체력이 남아돌았다. 폰세바돈은 정말이지 10가구도 채 되지 않는 정말 작은 곳이다. 샤워를 하러 화장실에 들어갔다가 레온에서 만난 현우와 여기서 다시 만났다. 지나가던 Rob이 빨래를 널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는 사진을 찍어주었다.

 

 

<Renate, Stefan, Gwen, Maya, 미시로>

 

<이런 시골마을에서 즐기는 독일 밀맥주>

 

<유럽에 와서 벛꽃나무를 보게 되다니>

 

<이런 애들이 그냥 동네를 돌아다닌다>

 

동네 아래로 내려가 바르에서 맥주 한잔하면서 일기를 썼다. 그러고 보니 이렇게 여행기를 쓰는 내내 일기를 썼다는 글을 계속 적는 것 같은데 지금 보면 그다지 일기장에 적힌 글도 없다. 그러다 어제저녁 아스토르가 거리에서 만난 한국인을 다시 만났다. 이름은 나래였고 고향이 같은 부산이었다. 내가 부산사람이란 걸 안 순간부터 나래씨의 입에서는 오리지널 부산 사투리가 튀어나왔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조금만 더 가면 만하린 Manjarin이라는 알베르게가 독특하다고 얘기했더니 오늘은 거기서 묵겠다고 한다. 그렇게 인사를 하고 헤어지고 나도 알베르게로 돌아갔다. 여기서 산 마르틴의 알베르게에서 처음 만났던 스페인 가족을 또 만났다. 이 가족은 구성이 독특했는데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형의 아내와 사돈부인 이렇게 넷이었다. 한국이라면 이런 조합으로 여행 다니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것 같은데…

 

<내가 아들은 아니고 아들은 촬영중…>

 

 

오늘은 놀랍게도 여기 폰세바돈의 알베르게 '도무스 데이 Domus Dei' 오스피탈레로의 생일이라고 한다. 여기는 좋은 게 아침과 저녁을 제공해준다. 오늘 저녁은 닭을 넣은 빠에야였다. 사실 커다란 냄비에 끓여서 빠에야라기 보다는 닭죽에 가까웠다. 요리는 오스피탈레로가 다 해줬고 순례자들은 식기 등을 놓고 테이블 세팅을 하고는 다 같이 모여 앉았다. 서로 자기소개도 하고 같은 국적인 사람들끼리 자기나라의 노래를 돌아가며 부르기도 했다. 사아군에서 처음 만났던 미국인 청년(고등학생인 동생을 데리고 같이 온 착한 청년이다)이 스페인어를 어느 정도 해서 오스피탈레로가 하는 스페인어를 어설프게나마 영어로 통역해 줬다. 바로 옆에 있던 독일인 루아나도 통역을 살짝 거들었다. 루아나는 독일어, 영어, 스페인어를 거의 완벽하게 구사한다. 그래서인지 한국어를 알려줘도 금방 이해를 하고 잘 외운다. 아버지는 독일인, 어머니가 페루인이라고 한다.

 

 

 

이렇게 저녁식사가 끝나고 설거지는 모두들 달려들어 일사천리로 해치웠다. 그리고 오늘은 자신의 생일을 자축하기위해 오스피탈레로가 위스키 한병을 꺼내들었고 몇몇이 모여 그의 생일을 축하해 주었다.

 

 

사실 이런 오스피탈레로를 보면 봉사와는 무관한 삶을 살았던 내 기준에서 보면 의문이 생긴다. 여기서 이렇게 순례자들을 위해서 봉사한다면 남들보다 몇 년을 뒤처질 것 같다는 지극히 한국적 마인드인 나를 발견했다. 내가 정말 찌들었다는 증거겠지. 여기서 생기는 헌금은 이 알베르게를 운영하기에 빠듯할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헌금을 더 많이 할걸 하는 후회가 들었다.

 

사용경비

카페 1.5

점심 4.3

맥주 2.5

헌금 5

총 13.3 / 누적 610.17유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