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극심한 가슴 통증으로 잠에서 깼습니다.
가슴과 목을 쥐어짜는 통증에 목이 뻣뻣하고 감각마저 이상한 느낌이 '이거 장난이 아니구나 내 몸에 뭔가 큰일이 났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날 자전거를 몇 시간 타고난 후 가슴이 조금 답답하긴 했는데 평소에도 가끔 이런 경우가 있었고 운동해서 그런가 생각을 했고, 저녁에 후배와 술 한 잔하고 잠이 들었었습니다.
가만있어서 나아질 분위기가 아니라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택시 타고 집에서 제일 가까운 응급실로 향했습니다. 다행히 응급실은 여유가 있었습니다. 응급실 바쁘면 아파도 몇 시간을 기다려야 된다는 얘기를 들었거든요.
응급실 의사에게 가슴이랑 목 통증 등 증상을 얘기했더니 술 마셨냐 물어보길래 막걸리 한 병쯤 마셨다 하고, 평소에 먹던 약은 없다 등등 물어보는 여러 가지를 대답했습니다. 의사는 이형협심증이 의심된다며 혀 밑으로 녹혀 먹으라고 약을 줬습니다.
그런데 약 이름이 무려 니트로글리세린!
바로 다이너마이트 만들 때 쓰는 그 니트로글리세린입니다. 혈관확장에 좋아서 약으로 쓰인다고 합니다. 많이도 주더군요. 한 10알은 넘어 보였습니다.
혀 밑으로 천천히 녹여먹으니 상태가 조금 나아지는 것 같긴 했는데 진짜 좋아진 것인지도 모르겠고 그 이상 차도가 없어서 잠시 응급실에 있다가 중환자실로 옮겨졌습니다.
난생처음 중환자실에 왔는데 별천지더군요. 제 침대가 중환자실 도착하자마자 여러 명이서 저를 중환자실 침대에 번쩍 들어 옮기더니 제 몸 위에 시트를 덮고 나서 속옷 포함 옷을 후루룩 벗긴 뒤 시트를 치우고 나니 신기하게 제 몸에 환자복이 입혀져 있습니다. 환자복이 앞뒤로 반반 나눠지는 모양이라 옮길 침대에 반이 있고, 제 위에 나머지 반을 올리고, 그 위에 시트를 올려 가리고 옷을 벗긴 뒤에 환자복 앞뒤를 끈으로 묶은 것 같았습니다. 순식간에 허물 벗듯 속세의 옷을 벗고 새하얀 환자복으로 갈아 입혀졌습니다. 처음 중환자실 와서 어안이 벙벙한 상태에서 의식이 있냐고 묻더군요. 저 의식 완전 멀쩡한데… 술이 좀 덜 깨서 그렇지만요.
저녁에 막걸리를 마셔서 그런지 화장실이 가고 싶어지더군요. 제 안경 어디 놔뒀냐고 물어보고 화장실도 물어봤습니다. 그런데 중환자실에서는 몸에 아무것도 착용하고 있으면 안 된다고 하더군요. 안경도요. 휴대전화는 당연히 사용 불가였습니다. 그리고… 중환자실은 화장실이 없다더군요. 그럼 어떡하냐고 하니 물통같이 생긴 걸 가져다주길래 거기에 볼일을 봤습니다.
조금 있다 어떤 간호사가 지나가다 오줌통을 보고 수거해 가면서
‘막걸리 먹은 오줌 냄새가 끝내주는 구머….ㄴ’ 이라고 얘기하는 순간 제 눈과 마주쳤습니다. 그 간호사는 제가 깨어있다는 생각을 못 한 것 같더군요. 끝말을 흐리면서 순식간에 사라졌습니다.
그때가 새벽 2시 정도였던 것 같습니다. 잠은 다 깼고, 통증은 그대로에, 안경이 없어 시야도 흐리고, 휴대전화도 못써, TV도 없어, 거기에 한 시간에 한 번씩 피 뽑고, 혈압체크에, 심전도까지 살짝 잠이라도 들라치면 깨우는 바람에 미칠 지경이었습니다.
거의 보이는 게 없는 시력이지만 너무 할 일이 없어 눈에 힘을 주고 주변을 살펴봅니다.
일정한 간격을 두고 침대가 있습니다. 새벽시간이라 대부분 잠을 자는 건지 말 그대로 중환자라 의식이 없는 건지 조용합니다. 각종 기기에서 내는 삑삑 하는 소리, 바쁘게 움직이는 간호사들의 소리만 들립니다.
잠시 뒤에 옆 침대에서 뿌직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악취가 나더군요. 네… 옆 환자께서 볼일을 보셨습니다. 간호사 둘이 가더니 그 아저씨의 기저귀를 벗겨 똥을 닦고, 다시 기저귀를 갈아입힙니다. 그런데 그 모습이, 마치 사람이 아니라 동물의 그것을 처리하는 듯한 모습이었습니다. 기저귀를 벗겨 놓고는 새 기저귀를 가지러 가는데 성기가 그대로 노출되어 있습니다. 물티슈로 엉덩이, 성기를 슥슥 닦는데 그 아저씨가 너무 불쌍하게 느껴졌습니다. 이 분은 어쩌다 중환자실에 누워 계신 건지, 사고를 당하셔서 그렇게 되셨는지 큰 병이 있으신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절대로 저렇게 아파서 의식을 잃고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 일은 없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의식을 잃고 침대에 누워 기저귀에 볼일을 보는 나.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그것을 처리해 줘야 하는, 뭔가 인간이 아닌 그냥 호흡하는 하나의 생명체일 뿐인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시간이 좀 지난 뒤, 뭔가 정식 의사는 아닌 것 같은, 인턴 같은 느낌의 의사가 아침에 교수님 오면 혈관조영술 할지도 모른다고 하더군요. 미리 준비를 하겠다며 제 사타구니 주변을 제모했습니다. 물론 여기는 중환자실이라 손가락 하나 까딱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시간은 흘러흘러 해가 밝아 옵니다.
실습 온 듯한 간호학교? 학원? 학생들 같은 사람들이 무슨 물이 가득 담긴 콘돔 같은 걸 들고 우르르 들어오더니 환자들 옆에 하나씩 걸어둡니다. 알고 보니 그건 물주머니더군요.
뜨거운 물로 머리를 감겨주는데 멍했던 정신이 조금 돌아오는 기분이었습니다.
머리를 감고 시간이 조금 더 지나자 드디어 교수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6시간 만입니다.
심전도 등 이런저런 차트를 체크합니다. 그러더니 응급실에서 나를 봐줬던 의사들을 쳐다봅니다.
마치 이명박짤의 이새끼들이! 하는 표정입니다.
의사가 저를 보며 웃으며 나이가 젊고, 심전도를 보면 협심증일 확률은 희박하니 혈관조영술은 되도록이면 하지 말자고 합니다.
내 사타구니 털은 왜 민 거죠?
그리고 의사가 충격적인 얘기를 합니다.
"역류성 식도염 같아 보이는데 확실히 하기 위해서 입원해서 이것저것 검사를 좀 해봅시다."
그런데 역류성 식도염?? 그게 가슴 아픈 거랑 무슨 상관이지? 그리고 역류성 식도염이면 니트로 글리세린은 왜 먹은 거지??
그렇게 일반 병동으로 옮겨졌습니다. 중환자실에서 탈출해 안경을 쓰니 세상이 환해 보입니다.
그리고 검사를 하나하나 받게 됩니다. 심장 초음파, 트레드밀에서 뛰면서 심전도 체크, 24시간 심전도 체크 등등....
결론부터 얘기하면 뭐가 잘못되었는지 이유를 알지 못한 채 퇴원하게 되었습니다.
의사 말로는 심장 컨디션 100%라고 합니다. 그리고 앞서 말한 역류성 식도염 가능성이 있으니 위장 내시경을 한번 해보라고 하더군요. 역류성 식도염이랑 가슴 통증이랑 뭔 상관이냐고 물어보니 심할 때는 그럴 수도 있다고 하네요.
검색을 해보니 정말 역류성 식도염 증상 중에 가슴쓰림이 있더군요. 식도와 위가 만나는 지점에 음식물이 식도로 역류하지 않게 똥꼬괄약근이 있는데 이게 조이는 힘이 약해지면 위산이 식도로 올라와 통증을 느끼게 된다고 합니다.
전날 안주 잔뜩 술 마시고 집에 오자마자 누워 자서 그런 것 같습니다. 음식 먹고 소처럼 누워 자면 역류성 식도염 걸리는 겁니다.
아무튼 이번 일이 건강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내가 더 이상 건강하지는 않구나라는 걸 느끼게 해준 해프닝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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